본문 바로가기

읽고

더욱 깊어진 마루야마 겐지의 '파랑새의 밤 (2017)'

파랑새의 밤 (2017), 마루야마 겐지


원제  - ぶっぽうそうの夜, 丸山健二

옮긴이 - 송태욱 옮김

출판사 - 바다출판사

다니던 무역회사가 도산하게 되어 탈출구 삼아 쓴 첫 소설 '여름의 흐름'이 잡지 <문학계>의 신인문학상을

수상하고 이어 최고 권위의 아쿠타가와상까지 거머쥠 (당시 일본 문학 사상 최연소 아카타가와상 수상자)

여기까지도 독특한 이력인데 이후 문단과 담을 쌓은 채 모든 문학상을 거부하고

쓰고 싶은 글만 쓰겠다는 각오로 속세와 인연을 끊고

20대의 젊은 나이에 일본의 북알프스로 불리는 고향 오오마치로 들어가 오직 집필에만 전념하고 있으니

이분도 거의 도인 급. 

최근에서야 나이가 많이 드셔서 그런지 사진도 보이고 방송이나 서면 인터뷰도 종종 보이는데

몇 년 전까지만해도 정말 신기루같은 분이라 인터뷰도 거의 찾기 힘들고 사진은 아예 찾을 수도 없을 정도

 

 

2013년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에세이 이후로 산문집에 재미를 붙이셨는지 연이어 매년 한 권씩

에세이집이 나오는데 어찌됐든 작가님의 글을 볼 수 있어 좋긴했으나

어찌된 영문인지 정작 '천 년 동안에 (2011)' 이후 소설이 나오지않아 이제 소설은 손 놓으신 건가.. 

90년대부터 일본의 많은 작가들과 좋은 책들이 많이 소개됐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존경하고 좋아하는 작가궁금하면서도 한편으론 나이가 나이인지라 걱정도.


그런 상황에서 '파랑새의 밤'을 봤을 때의 기쁨이란~

2000년도에 발표했던 초고를 14년이란 시간을 거쳐 2014년도에 나온 것인데 

마루야마 겐지 작가라면 능히 그럴수도 (일본엔 2014년에 발간됐고 국내엔 2017년) 있다 생각되고

오랜 시간이 걸려서인지 기존 소설과는 다르게 500쪽이 넘는 장편이라는 점이 먼저 눈에 띄며

심플한 커버는 여전히 그의 소설다운 느낌. ​ 

14년의 퇴고를 거쳐 나온 책, 천 년 동안에 이후 약 6년 만에 접하는 소설이라 무척이나 기대 

 

 

 

70이 넘은 나이지만 초반부터 그의 필력이 느껴지는 문체는 힘과 생동감이 초기 작품 못지 않을 정도로 여전하고 상황묘사나 내적 갈등 역시도 단번에 그의 스타일을 느낄 수 있는데

궁지에 몰리는 인물은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 혹독하고 가혹해서

처절하다거나 절망적이다 정도의 표현으론 어림도 없는 인생의 바닥을 너무나 냉담하게 표현하지만

주인공은 그런 운명을 누구에게도, 신에게도 원망하지 않으며

동정이나 연민을 바라지도 않고 그렇다고 또 운명을 개척하려고도 하지 않은 채

그냥 담담히 받아들여 죽는 것만큼은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죽는다며 고향으로 향하는데..

비극에 비극을 더하는, 낭떨어지 끝이 아닌 이미 떨어진 주인공의 상황이 흥미롭지도, 쉽게 공감도 되진 않으면서도 특유의 직선적이고 사실적인 표현이 좋아 진도가 어렵진 않으나

책의 절반이 주인공의 처한 상황이나 마음가짐 등이 지속적으로 반복되기에

다소 답답한 면도 없지 않고 앞으로의 전개가 부담이 되기도해서 과연 무엇으로 어디로 끌고 가는 것인가


그런 궁금증으로 서서히 지칠 무렵, 지금까지와는 다른 분위기가 감지되고

서서히 전환된 분위기는 300페이지가 넘어가서도 예상하지 못한 스토리로 속도를 높이며

작가의 기존 소설에선 느끼기 힘든 팽팽한 긴장감이 보여지는데

후반부는 마치 스릴러나 추리물처럼 서스럼없이 옥죄며 스트레이트로 달려가는 느낌

다만, 이 부분 역시도 같은 상황을 비슷한 패턴으로 끄는 전개에 약간은 힘이 빠지긴 하는데

작가 고유의 스타일과 새로운 화법이 더해졌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이해하기로.

그냥 단순한 스릴러로 끝내기엔 앞서 끌고왔던 덩어리가 너무 거대하고 깊기에 조마조마했는데

​역시나 거장 마루야마 겐지 작가답게, 아니 그 이상,

해탈한 듯한 주인공처럼 작가는 일심동체되어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작가만의 세계로 마무리되고

명확한 해석과 이해가 어려운 엔딩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졌지만

모호하고 신비로운 여운은 길게 남는 '파랑새의 밤' 

 

 

파랑새의 밤
국내도서
저자 : 마루야마 겐지 / 송태욱역
출판 : 바다출판사 2017.07.31
상세보기